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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2025 사회구조 변동 관련 수필 공모전 수상작 안내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5.10.30 조회수970

 
대상
AI
시대, 인간이 남겨야 하는 것
양승원
 
가끔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는 한다.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다가도, 지하철을 타며 무표정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다가도,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라는 물음이 문득 다가온다. 물론 현재 겪고 있는 상황에 의해 조금은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삶에서 를 묻지 않으면, 그 무엇도 얻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본질을 찾아가려 애쓴 적이 있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시험 점수에 관한 것이거나, 향후 진로에 관한 것처럼 구체적인 목표와는 약간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에 관한 물음이었다.

AI가 우리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지금, 이런 질문은 더 자주 나를 찾아왔다. AI를 통해서는 원하는 정보를 얻는 건 점점 더 쉬워졌다. 요약, 정리, 분석은 단지 몇 초 만에 이루어진다. 특히 내가 속해 있는 학과의 특성상, 머지 않아 AI에게 잡아 먹힐 시기가 그려지고 있다. 왜냐하면, AI가 시도 쓰고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노래 가사를 쓰는 등 여러 창작물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를 통해 얻은 정보가 내 삶에 어떤 무게를 주는지, 또 그것이 나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AI는 내가 그 정보를 원하는지, ‘이러한 활동들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더불어, 겉으로는 그리 보이지 않지만 무미건조하게 01의 조합으로 나에게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었다. AI가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 답을 더듬던 시기, 나는 독서 모임에서 특별한 순간을 맞이했다. 함께 읽은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였다. AI에게 책의 내용을 요약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임에서 벌어진 대화는 단순한 요약과는 전혀 달랐다. 한 친구는 저자가 겪은 아픔을 자기 가족 이야기와 연결해 눈시울을 붉혔고, 또 다른 친구는 책 속 문장이 자기 외로움과 정확히 겹친다고 고백했다. 나는 저자의 철학적 메시지를 꺼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와 겹쳐 보았다. 그 순간, 우리는 단순히 책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언어를 매개로 서로의 삶을 엮어가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그저 텍스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애와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말에 대해 작가가 문장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말끝이 길어져 방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을 때조차, 그 침묵은 무언가를 곱씹는 진중한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AI는 문장을 뽑아내고 정리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그 정적 속에 흐르는 감정과 연결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데이터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꿰매어 만들어내는 결론임을 그 자리에서 절감했다. , 독서 모임에서 최근 삶의 의미에 관한 책을 읽었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함께 나누던 날,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AI가 글을 잘 쓰고 계산을 더 잘한다고 해도, 내가 겪은 아픔을 견디게 한 건 나만의 삶의 의미였어. 그것만큼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잖아.” 그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아무리 AI가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는 이야기를 해도, 그 무엇도 인간의 진정한 울림을 건드리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프랭클이 극한 상황에서조차 삶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고통의 순간에도 스스로 의미를 붙잡고 살아간다. 인간은 그런 선택을 통해 존엄을 지킨다.

또 하나의 기억은 봉사 현장에서 찾아왔다. 나는 교내 중앙동아리 AIESEC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이번 여름 방학에 김천의 교육 소외 지역에 있는 중학교에 방문해 45일간 멘토링 봉사 활동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여느 대학생의 방학 생활이 그렇듯, 나 역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며 솔직히 김천에 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또한, 내가 중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 줘야 할지를 고민하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을 마주하자 예상치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아이들이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들으며 활동적으로 참여해 주고, 환하게 웃어 주었을 때 나는 순간 기뻤지만, 곧 그 웃음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조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무게가 벅차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작은 물음이 울렸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봉사는 단순히 누군가의 부족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의미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불편함과 작은 희생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줄 때, 나는 단순한 성취감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와 닿아 있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45일을 타지에서 지내며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피곤함보다 더 큰 것은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충만함이었다. AI는 봉사의 방법을 안내할 수는 있어도, 타인을 위해 나를 내어주며 얻는 이 깊은 울림은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고통과 희생조차 의미있는 무언가로 바꾸어내는 존재였다.
또 다른 경험은 AI가 만든 그림 앞에서 시작되었다. 온라인에 올라온 AI 작품은 놀라울 만큼 정교했다. 색감은 눈부셨고, 구도는 안정적이었다. 강의 시간에도 가끔 교수님들께서는 AI가 그린 그림과 인간이 그린 그림을 비교하는 퀴즈를 내고는 하셨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묘한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 그림이 그려졌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붓을 들 때는 종종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담는다. 어떤 이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이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그린다. 완성된 그림 속에는 그 사람의 고백과 흔적이 남는다. AI가 그린 그림에는 그런 가 없었다. 겉으로는 완벽했지만, 그 안에는 목적도, 고통도, 희망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같은 주제로 인간이 그린 그림을 떠올렸다. 비록 서툴고 균형이 맞지 않더라도, 그 안에는 작가의 떨림과 체온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떨림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AI의 그림은 눈을 즐겁게 할 수는 있어도, 마음 깊은 곳까지 흔들지는 못했다. 그 차이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인간은 스스로 목적을 세우고, 때로는 그 목적을 위해 고통을 선택한다.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의미를 붙잡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조차 삶의 의미를 찾았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사실을 더욱 깊이 깨달았다. 의미는 가장 혹독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세 가지 경험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일어났지만, 결국 한 지점으로 수렴했다. 우리는 AI보다 비효율적일 수 있고, 때로는 더 느리고 서툴다. 그러나 인간만이 자기 삶의 이유를 묻고, 서로의 답을 나누며, 그 속에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간다. 사회 통합과 상생도 결국 이 능력 위에서만 가능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듣고, 서로의 삶을 존중할 때 우리는 분열이 아니라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다.

AI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다. 기계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는 없다. 그 질문을 붙드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 일상 속에서 이 물음을 놓치지 않고 싶다. 왜냐하면 의미를 찾는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수상
사람이 있는 창구
윤주효

나의 일터인 도서관 대출 데스크는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뉘었다. 왼쪽에는 침묵 속에서 바코드와 적외선이 오가는 키오스크가, 오른쪽에는 여전히 사람의 목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공존하는 나의 창구가 있다. 그 기계의 등장으로 도서관 입구의 공기마저 바뀌었다. 이전에는 모든 동선이 내 앞으로 모이는, 작게나마 광장의 역할을 하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목적지가 다른 두 개의 섬으로 분리된, 차가운 군도(群島)가 되었다. 나는 그 경계에 앉아, 소리 없이 도래한 새로운 시대의 풍경을 매일같이 목도하는 관찰자가 되었다.

키오스크의 등장은 '효율성'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 학생들은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그들은 데스크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마치 유령처럼 기계 앞에서 자신의 용무만을 처리하고 사라졌다. 그들의 동선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불필요한 마찰도 없었다. 이어폰을 낀 채 스크린을 몇 번 터치하는 것만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는 그 모습은, 누구의 시간도 방해하지 않는 현대 사회가 예찬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의 노동 분담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이 키오스크를 택하는 이유는 단지 속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적 마찰' 그 자체를 회피하려는 우리 시대의 무의식적인 욕망일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불필요한 대화, 예측 불가능한 질문, 상대의 감정을 살펴야 하는 미세한 피로감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 키오스크는 바로 그 안전한 고립의 공간을 제공한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타인이라는 '불확실성'을 삶에서 얼마나 교묘하게 제거해 나가고 있는가. 도서관의 풍경은 그 거대한 사회적 흐름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 효율성의 신봉자였다. 도서관 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키오스크를 가장 능숙하게 사용하는 학생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카페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영화관에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키오스크로 향했다. 배달 앱으로 식사를 주문하고, 온라인 쇼핑으로 생필품을 구매했다. 나의 일상은 이미 수많은 비대면 서비스와 효율적인 알고리즘 위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내가 편리함을 누리는 소비자일 때는 그 시스템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예찬하면서, 노동자로서 나의 자리를 위협받을 때만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모순된 존재는 아닌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나와 키오스크 앞에 서 있는 나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그 자기모순에 대한 자각은, 나의 시선을 조금 더 복잡하고 겸허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나 역시 그 효율성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나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이 새로운 시스템의 연착륙을 돕는 것이었다. 나는 데스크를 찾아온 모든 이용자에게 이전과 같이 책을 처리해주면서, 빠뜨리지 않고 덧붙였다. "이제 저쪽에 키오스크가 새로 생겨서, 다음부터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처리하실 수 있어요." 나의 친절한 안내에 대부분은 반색했다. "아, 정말요? 잘됐네요!", "다음엔 저걸로 한번 해봐야겠어요." 그들의 밝은 표정에서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었다. 편리함의 전파,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선의였다.

그 믿음에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생긴 것은 어느 날 오후였다. 늘 그렇듯 데스크로 찾아오신 한 중년의 이용자분께 책을 건네 드리며, 나는 기계적으로 나의 안내 멘트를 반복했다. "선생님, 저기 키오스크 이용하시면 다음엔 더 빠르실 거예요." 그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 그래요?" 그 짧은 대답 속에는 내가 기대했던 반가움 대신,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아쉬움의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는 더 말없이 돌아서 나갔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왜 그는 기뻐하지 않았을까. 더 편리해지는 일인데, 무엇이 그를 아쉽게 만들었을까.

그 질문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창구는 여전히 문을 닫지 못했다. 아니, 닫을 수 없었다. 키오스크의 존재를 알면서도 굳이 나의 창구를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날의 그분처럼, 기계가 제공하는 속도와 효율 너머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그 가치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데스크 앞에서 펼쳐지는 작은 상호작용들 속에서 그 답을 어렴풋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지 기계가 낯설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분들의 책을 받아들며 종종 생각했다. 이분들이 나를 통해 책과 함께 다른 무언가를 빌려가고 있음을 말이다. 키오스크의 언어는 '명령'과 '실행'이라는 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이용자를 익명의 데이터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나의 창구에서 오가는 언어는 달랐다. 그것은 질문과 감상, 안부와 농담, 때로는 침묵마저 포함하는 다채로운 소통의 언어였다.
"학생, 이 주제에 관해 요즘 나온 책이 또 있나?"
"지난번에 빌려 간 그 작가 책 말이야, 아주 인상 깊게 읽었어."

키오스크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질문에 답해주거나 그들의 감상에 고개를 끄덕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기계는 정해진 '기능'을 수행할 뿐, 책을 매개로 한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분들에게 대출과 반납은 단순히 책의 소유권을 잠시 이전하는 행정적 절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지적 탐험에 대한 작은 조언을 구하고, 때로는 공감을 확인하며,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소통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어느 한산한 오후, 문득 나의 자리가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압도적인 효율 앞에서 나의 노동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바로 그때, 늘 찾아오시던 한 노교수님께서 책을 내밀며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기계는 답은 주지만, 질문을 들어주진 않으니까. 사람이 있는 곳이 역시 편해."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며칠 전 아쉬운 표정을 지으시던 그 이용자의 얼굴과 교수님의 말이 하나의 의미로 겹쳐졌다. 키오스크가 대출 기록이라는 '데이터'를 남긴다면, 나의 창구에는 그와는 다른 종류의 역사가 쌓이고 있었다. 이용자의 미간에 잡힌 고뇌의 흔적, 새로운 책을 발견했을 때의 희미한 미소, 지난주에 나누었던 대화의 기억 같은 것들. 그것은 결코 숫자로 기록될 수 없는, 인간의 체온이 담긴 역사였다. 나의 소임은 바로 그 기록되지 않는 역사를 목격하고, 때로는 그 일부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효율의 언어가 아닌, 공감의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망설임을 기다려주고, 사소한 질문에 귀 기울여주며, 기술의 속도에 밀려난 이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 있는 창구'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세상은 더 빠르고 편리한 것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인간적인 접촉과 느린 소통은 점점 더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모든 것이 효율의 논리로 재편될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몇몇 일자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사소한 실수, 비합리적인 감정, 예측 불가능한 대화의 즐거움과 같은 삶의 본질적인 부분들일 것이다. 도서관의 작은 창구에서 나는 보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데이터가 맥락을 대체할 수 없으며, 효율이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의 자리는 사라져야 할 과거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공간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데스크에 앉아 '삐빅-' 하는 차가운 기계음 너머로 "안녕하세요"라는 정겨운 인사말을 기다린다.
우수상
지평선: 기후위기 속 작은 균열의 공동체
이민경
기후는 사회 자체를 뒤흔드는 힘이 되었다. 더 이상 날씨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폭우 한 번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 잠기고, 며칠의 폭염에 온열질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목격했다. 어릴 적, ‘재난’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정상적인 사회 제반이 지속 불가능한 극한의 상황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에서는, 매일 저녁 뉴스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재난’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체감했던 것 같다. 기후변화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동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
문은 그즈음부터 시작되었다. 홀로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인 차원의 노력을 했지만, 무력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거대한 변화 앞에서 내가 하는 행동이 상황의 개선에 유의미한지 혼란스러웠다. 24년 초여름의 나는 무엇이든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누군가 사람은 혼자서만 버틸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비슷한 불안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름은 ‘지평선’, 지구 평화를 선언한다는 나름 당돌한 외침이었다.

지평선은 소박하게 출발했다. 거대한 캠페인도, 화려한 모금도 없었다. 단지 모임마다 누군가가 기후 관련 논문이나 기사를 발제하고, 그 내용을 서로 나누는 일이었다. 모임에서 다룬 것들은 기후 위기와 삶, 제도, 정치와 경제였는데, 그 시간 안에서 이미 우리의 삶과 사회를 뒤흔들 변화를 보았다. 모임의 마지막에 우리가 갖게 되는 결론은 비슷했다. 이것이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임의 경험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안전함이었다. 내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불안을 꺼내놓아도 아무도 비웃지 않았고, 짧고 엉성한 생각조차 존중받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단지 토론의 장이라기보다는 ‘함께 버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지식보다도 나누고 존중받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기후 위기가 사회 구조를 흔드는데, 그 구조를 함께 해석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은 훨씬 덜했다.

모임을 이어 가며 성취와 즐거움은 분명했다. 매번의 토론은 파편적 뉴스들을 하나의 서사로 이어주었다. 예를 들어, 기후 재난 뉴스와 국가의 기업 에너지 제도를 함께 읽으니, 환경 변화가 곧 정치와 경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보였다. 내가 행하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 예를 들면 대중교통 이용과 다회용기 사용도 사회적 맥락 안에서 새롭게 의미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커지는 의문도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매주 공부한다고 해서, 실제 사회는 달라질 까?” 규모가 작고, 영향력이 미약하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공동체를 시작할 때 품었던 불안은 여전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설령 우리 스스로 큰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규범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 구조 변동에 대한 작은 응답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의식은 교수님과의 면담 날 내 생각을 털어놓으며 그 해소 방향성을 찾게 되었다.

나는 우리의 활동이 단순한 공부를 넘어선 것임을 점점 더 분명히 느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기후 위기를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위험, 나아가 제도와규칙을 흔드는 사건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읽은 기사들 또한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도심 재난을 다룬 연구는 기후변화가 기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안전망과 인프라에까지 균열을 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처음 내가 느낀 무력감은 뒤르켐이 말한 아노미와도 닮아 있었다. 기존 규범이 붕괴할 때 개인이 길을 잃는다는 그의 설명은 지금 우리의 경험과 겹쳤다. 그러나 지평선은 단순한 이론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규범의 실험 그 자체였다. 발제를 돌아가며 맡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작은 규칙들이 모여, 혼란 속에서 의미를 다시짜는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 고민을 교수님께 털어놓았을 때, 교수님은 “ad intra 와 ad extra, 안으로 향하는 힘과 밖으로 향하는 힘의 균형”이라는 말을 남기셨다. 물이 담긴 양동이를 돌릴 때 구심력과 원심력이 서로 맞아야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비유도 덧붙이셨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그 말은 우리의 자리를 새롭게 비추어주었다. 내부의 지지와 안전함만으로는 닫힌 섬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바깥을 향하는 힘이 있어야 함을 일깨워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지평선은 너희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셨다. 그 질문을 오래 붙잡으며, 나는 깨달았다. 지평선은 단순한 공부 모임이 아니라, 불안한 시대를 함께 견뎌내는 새로운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을.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더 배웠다. 사회적 실천은 언제나 거대하고 영웅적인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쩌면 작은 파문일지 모르지만, 파문은 연결되며 다른 지점에 파동을 만들어낸다. 사회 운동론을 빌리자면, 규모는 미미하지만 누적되면 사회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평선 역시 구조적 변동에 응답하는 작은 사례였다.

지평선은 구조적 의미를 넘어 인간적인 경험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사유처럼, 인간의 존엄은 타인과 함께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우리는 거대한 사회 변화를 멈출 수는 없었지만, 함께 낭독하고 토론하는 그 순간, 존엄은 작게나마 드러났다. 누군가 기사 한 줄을 발제하고, 우리는 그 문장을 붙잡아 각자의 삶을 연결했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 공유가 아니라 함께 행위를 하는 경험이었다. 또, 바우만이 말한 유동적 근대의 불안정성은 우리의 시대를 설명했다. 기후 위기는 그 불안정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불안이 모든 것을 마비시키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 불안을 나누고, 존중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구심력과 원심력’은 물리학의 개념이지만, 어떻게 보면 공동체의 조건으로 볼 수도 있다.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안전을 구심력이라고 할 때, 외부로 퍼져 나가려는 작은 확산은 원심력이 되기에. 공동체는 이런 균형 속에 지속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후변화로부터 ‘우리’를 지키고자 하는 지평선의 노력은 ‘우리’가 존엄과 연대를 지켜나가는 방식이기도 했다.

“기후 위기를 정말 사회 구조 변동이라 불러도 되는가?” 여전히 갖고 있는 물음이다. 그러나 제도의 개편, 재난 대응의 재구성, 생활비와 공급망의 흔들림, 그리고 생활기반의 위협 등을 볼 때 답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한 기후변화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 전체의 변동이었다. 날씨가 정치와 경제를 변화시키는 장면을 우리는 매 여름 보고 있다. 폭염 속에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게 되자, 가정의 전기요금 고통을 호소하는 여론은 곧 에너지 정책 논쟁으로 이어진다. 사회학의 개념 속 문장이 아니라, 내 일상의 구체적 불편과 불안 속에서 구조의 균열이 드러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본 셈이다.

나에게 지평선 활동은 기후 위기라는 사회구조 변동 앞에 서 있는 개인의 피난처였다. 동시에 불확실한 시대에도 서로를 지탱하게 하는 균형과 연대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글을 읽고, 곱씹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각기 다른 삶이 언어로서 교차하는 순간은 공동체로 모이는 것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평선에서 보내는 시간은 축적되면서 저항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끔 이끌었다. 우리는 믿는다. 우리를 위협하는 사회구조의 변동에 거대한 반격을 가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명히 약간의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약속한다. 단순히 안도감에서 끝나지 않기. 그리고 무력함에만 머물지 않고 타인과 함께 살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기. 추상적인 이론의 차원을 넘어, 사회 기반과 일상의 제도를 뒤흔드는 힘을 갖는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관찰만 할 수는 없다.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은 구조적 전환이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살아서 응답해야 하는 존재로 서 있는 것이다.
장려상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장은서

인간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고, 마음을 통해 그것을 해석한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 둘 중 무엇이 인간에게 있어 더 본질적인가? 철학은 오래전부터이 질문을 법정에 세워두곤 했다. 잠시 철학자라는 재판관의 판결문에 귀 기울여 보자. 판결문은 이렇게 말한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 죽음을 통해 영혼은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난다.”(소크라테스) 동서를 막론하고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인간의 본질적인 것으로서 불멸한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이로써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이라는 인식이 오래도록 뿌리내렸다.

그러나 인간에게 몸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이 사실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보낸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오며 생생하게 실감했다. 우선 ‘기숙사 고등학교’는 그 자체로 몸이 활보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행사한다. 기숙사, 교실, 면학실, 이 세 공간을 잇는 것이 나의 이동 동선의 한계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큰 낙은 조식 시간에 몰래 학교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아침 공기를 몸 안 가득 채우는 일이었다. 물리적으로 모든 것이 통제된 환경에서의 몸의 일탈은 나에게 막대한 자유를 선사해 주었다. 이 10분가량의 짧은 환기구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생활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고등학교 생활에 설상가상으로 더해진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은 그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물리적 거리를 넘은 관계의 거리까지 제약해왔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짝이 있던 적이 거의 없는데, 교실의 책상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전부 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옆에 있는 타인의 존재를 그 온기로서 실감할 기회가 나에게는 없었다. 한 사람의 크기는 그 옆의 빈 간격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온몸의 예술에 대하여
고등학교를 지나오며 몸의 중요성을 실감한 나는, 대학에 들어온 첫 학기에 연극 동아리에들어갔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매체는 문학 또는 영화였지만, ‘몸’을 가지고 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연극 동아리에 지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지금까지 내가 대학에 들어온 뒤로 한 일 중 가장 큰 충만감을 주었다. 연극에서 몸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직접 무대를 만들고, 손수 조명을 달고, 발로 뛰어 공연을 홍보하면, 비로소 연극을 위한 공간이 열린다. 그 공간에 들어온 배우가 온몸을 통해 작품을 구현하면, 눈앞의 관객들이 웃고 운다. 언제든지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책이나 돌려볼 수 있는 영화도 나에게 무척이나 소중하지만, 순간 속에 잠시 펼쳐졌다 곧 사라질 뿐인 연극은 나에게 잊히지 않는 벅참을 주었다.

연극 동아리에서 네 번의 공연을 올렸지만, 무엇보다 가장 마음 깊이 남은 공연은 내가 직접 연출부로 참여한 공연이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밤이 찾아오면 주인공 ‘나’는 다시금 불면에 시달린다. 그런 ‘나’의 밤에 슬며시 찾아오는 ‘너’가 있다. 둘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날이 밝을 때가 되어서야 서로 기대어 잠을 잔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다. 불면하는 주인공 ‘나’는 참사 이후 남겨진 우리를, ‘나’가 불면하는 이유지만 동시에 그 불면의 밤을 견디게 해주는 ‘너’의 존재는 참사의 희생자들을 상징한다. 이 작품으로 하여금 우리는 국가적 참사를 떠올리며 때로는 잠 못 드는 밤들을 맞이할 것이지만, 그 불면 속에서 참사의 기억과 마주하는 경험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와 ‘너’가 맺는 우정의 관계처럼, 참사가 각자에게 잊히지 않는 고유한 기억으로 남아 개인이 사회적 아픔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기를 바랐다.

섬세한 윤리적 숙고를 필요로 하는 작품을 종이에 적힌 대본에서부터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변환하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정말이지 소중했다. 마음속에 관념들로 존재했던 참사에 대한 감각이, 연극을 통해 시공간 속에 물리적 실체로 구현되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체험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것을 연극 공연을 올림으로써 최대한 나누고 싶어 마음을 다했다. 이것이 연극이 나에게 새긴 소중한 배움이다.

정리하자면 이런 말이다. 아무리 기술의 발달이 우리를 온라인 세상으로 이주시키려고 해도, 인간 몸의 물질성은 시공간을 점유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끝내 완전히 포섭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연극을 통해 배웠다. 그런데 이런 결론에 닿았을 때, 그렇다면 우리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자축하며 기뻐하면 되는 것일까?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다가왔을 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것을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인간과 기술의 대립적인 구도와 기술에 대해 경계하는 태도를 전제하는데, 이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 또 하나의 경험이 있다.

몸 없는 우정의 가능성
이것은 ‘글쓰기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비롯해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온라인 화상회의를 열고 카메라 앞에 앉는다. 각자는 자신의 방에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온라인 공간에 함께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글을 쓰고, 공유 문서를 통해 글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우리는 비대면의 제약을 이겨내기 위해 때로는 마이크를 켜서 서로의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 나는 서울에 있지만 누군가는 부산에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독일에 있기도 하다. 더불어 때로 컴퓨터 글씨가 딱딱하게 느껴질 때면 우리는 직접 쓴 손글씨로 자신의 글을 공유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두꺼운 공책에 글을 적고, 또 누군가는 예쁜 디자인의 엽서를 골라 글자를 담는다. 나는 그들 중 누구와도 직접 만난 적 없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시간을 나눌수록 그들을 나의 친구로 느낀다.

이 글쓰기 공동체의 목적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마련하자는 것이고, 나의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는 소중한 경험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공간적’ 제약이 있지만, 기술을 인간을 위해 활용한다면 그런 제약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온라인 공간에서 가장 내밀하고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꺼내 놓는다. 삶을 이야기로 바꾸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일의 온기를 온라인을 통해 전파한다. 이것이 글쓰기 공동체에서 내가 얻은 새로운 배움이다. ‘몸’의 제약을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나 대신 글을 써줘”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나 대신 연극을 해줘”라며 몸이 할 일을 떠넘기지는 못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나 대신 글을 써줘” 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인공지능이 생성해 주는 글은 결과로서의 글이다. 그것은 표면적이며 멈춰있고,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글쓰기라는 것은 ‘과정’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그 안에 충만함과 생동감, 그리고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의 글을 쓰기 전과 후의 나는 달라져 있다. 글을 쓰는 ‘과정’은 거듭남을 반복하게 하는 것
이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낼 열린 장을 개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술 모두 글을 쓸 수 있지만, 기술이 하는 것은 ‘조합’이라면, 인간이 하는 것은 ‘생성’이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이 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글쓰기라는 과정이 인간의 것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이다.

정확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연극에서의 배움은 나에게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감각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글쓰기 공동체에 참여한 경험은 나에게 몸이 없이도 지극히 인간적인 사건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이처럼 두 상반된 체험이 모두 가능했던 이유는, 두 사건의 본질은 인간의 ‘몸’의 유무가 아니라, 바로 ‘삶’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의 경험은 삶에서 ‘몸’이 필요한 이유를, 글쓰기 공동체에서의 경험은 삶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배움을 준다. 인간에게 몸과 마음이 모두 있는 이유는 그 둘 모두 삶에 있어 본질적이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법정을 열어본다. 몸과 마음은 다시금 법정에 들어선다.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은 급하게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신중히 질문하는 능력이다. 어떤 질문을 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어떤 답을 받을 것인지를 이미 결정하게 된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우열관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왜 이 둘이 모두 주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렇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몸과 마음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올바른 질문이 던져질 때 비로소 유의미한 답은 도출된다. 몸과 마음은 입을 모아 이렇게 외칠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한다고. 삶이 있는 곳에 몸과 마음은 모두 있을 것이라고. 그것이 결국 삶이 인간 고유의 일임을 증명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기술이 포섭하지 못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이고,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정확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장려상
‘그러려니’의 미덕
최은서

“요즘 미국 사회가 흉흉하대. 총 맞을지도 몰라, 위험하니까 여행가지 마.”
미국 여행을 가고 싶다던 나를 친구가 만류했다. 친구가 나를 말린 이유는, 최근 있었던 ‘찰리 커크 총격 사건’ 때문이리라. 대표적인 정치 논객인 찰리 커크가 총에 맞은 이 사건은, 현재 극단적으로 나뉜 미국의 젊은 세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범인은 2003년생, 나와 동갑이다. 충격적이었다. 어린 학생인 줄로만 알았는데, 충분히 어떠한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나이구나-라는 점이 특히 그랬다.

비단 미국뿐일까?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젊은 세대는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얼마 전 계엄 사태를 떠올려 보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로함이 몰려온다. 남녀 갈등을 떠올려 보자. 더욱더 논하고 싶지 않다. 부부끼리도 정치 얘기는 하는 것 아니다 – 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그만큼 예민한 주제이다. 그러나 예민함을 넘어서, 우리도 알듯 정치관으로 대표되는 현재 20대의 극단적 갈등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뻔한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정치관을 수필로 적어낼 정도로 나의 정치색은 뚜렷하지 않다. 그저 우리가 더 이상 극단적으로 서로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며 감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작년 계엄 직후,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가 시위를 이어 나갔다. 누구는 옹호하러, 누구는 반대하러 나갔으리라. 학교 친구들이 모였을 때, 자신과 반대에 서 있는 사람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보고 참 많이 놀랐다. 이토록 공개적이고 극단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을 대학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새삼, 우리가 꽤나 격앙되어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그러면, 대체 왜 젊은 우리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한 것일까. 남과 여,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가 정치적으로 ‘갈라치기’를 만들어 냈는지 하는 논쟁은 잠시 접어 두겠다. 나는 젊은 우리의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이유를 찾고자 했다. 경쟁, 이기심, 욜로(YOLO). 우리 세대를 보여주는 단어다. 개인주의적인 마음이 극대화된 이기적인 마음이 우리를 이만큼 극단적으로 변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그러려니’의 미덕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에코 챔버 혹은 반향실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소리가 메아리쳐 다시 돌아오는 것에 기반한 에코 챔버는 인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고 그곳에 고립되어 더욱 극단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인터넷과 친숙했던 20대들이 더욱더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 것에는 정밀해진 알고리즘 기술도 한몫하였다.

 SNS든 인터넷이든 휴대폰을 활용해서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서로 다투고 있다. 극단적인 표현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붙고, 그대로 날아가 타인에게 스스럼 없게 상처를 준다. 하루에도 수 시간을 휴대폰을 보는 나로서는, 피로감이 드는 한편 쉽게 그들에 동조되곤 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이상, 더 이상 나의 주체성을 잃고 타인에게 쉽게 휩쓸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나부터 ‘그러려니’의 사고를 실천하기로 했다. ‘저 친구는 왜 매일 인스타그램에 무의미한 전시를 할까?’, ‘저 친구는 왜 항상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쉽게 타인에 대해서 부정적 평가를 내리곤 했었다.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생각을 해보니, 그저 내 스타일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에게 피해를 주었는가? 아니다. 나의 자유를 침해했는가? 아니다. 그저 쉽게 남을 싫어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려니’의 성능은 대단했다. 폰을 보며 눈을 찌푸릴 일도 줄었고, 괜히 특정 주제에 대한 글을 보다가 울컥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타인에게 무작정 비난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 나는 우리 세대가 쉽게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가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왔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이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단지, 지나친 이기심에서 비롯되어 나와 다른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쉽게 싫어하게 되는 상황이 경계될 뿐이다. 내가 제시한, 그리고 실천해 본 ‘그러려니’는 우리 세대가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십분 활용하였다.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타인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개체라고 해서 함부로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저런 사상을 가졌구나.’, ‘저 사람은 저 정당을 지지하는구나.’ 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는 것이다.
 ‘그러려니’의 생각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타인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현재 마주한 극단적인 마음들, 타인을 쉽게 비판하는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나의 경우 그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무관심하라거나, 분명히 틀린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려니’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과 나의 견해가 다른 상황에서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이지, 분명히 틀린 것, 다시 말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생각에 대하여 수긍하라는 뜻일 수 없다.

 나는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돌이켜 보면 저학년일 때는 수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갔다. 다양한 동네에서 온 동기들을 떠올려 보면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다들 나와 조금씩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잘못되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다를 뿐이다. 1, 2학년때 지켜본 동기들의 크고 작은 마찰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이 서로 다른 자신들을 맞춰 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그들이 받아들이고 넌 그랬구나, 난 이랬어 하는 식으로 갈등을 해결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20대의 최근 갈등을 소재로 우리 모두가 ‘그러려니’ 하며 타인을 받아들여 준다면 현재 사회의 큰 문제인 극단적 양분화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특히 현재 20대들이 가장 큰 특징인 ‘개인성’을 이용하였다. 대학생으로서의 우리는 매우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좋은 때, 더 이상의 다툼보다는, 더 이상의 힐난보다는 서로를 보듬어 가는 우리 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장려상
서울시청에서의 광복절
현해영
 
종강 후 커진 씀씀이에 돈이 궁해가던 어느 날, 구인 사이트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뒤적거리던 중 한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광복 80주년 기념행사의 보조 스태프로서 참여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였다. 나는 바로 지원했고, 광복절 바로 다음 날인 816일에 아침부터 서울시청으로 향하였다. 무더운 햇살 아래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공연 행사였기에 더욱 책임감 있게 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한창 리허설 중인 무대 앞에 시민들에게 안내하는 역할에 배정받았다. 배치받은 장소에서 서 있는 도중, “공연 어떻게 볼 수 있나요?”라는 말씀과 함께 한 어르신이 다가왔다. 나는 전달받은 대로 온라인으로 사전 예매해주신 분들만 후에 구매권을 받아서 입장 도와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너무나 아쉬워하며 요즘은 무언가를 하기 너무 어렵다고 말씀했다. 나는 괜히 죄송했다. 왜냐하면, 전에 봤던 기사가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관람권이 온라인에서 매진되어 어르신분이 보시기 어렵다는 내용의 기사와 키오스크를 사용치 못해 음식과 커피 주문을 어려워하는 어르신분들을 돕지 않는 식당 직원들과 관련한 내용의 기사였다. 기사에 대한 댓글에는 제도가 필요하다, 도와드려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는 다소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풍족한 게 하나 없던 그 시대에서 경제의 발전을 이끈 그 당사자들은 빠른 발달로 인해 문화생활조차 못하게 되는 현실이 내 눈앞에 놓였다. 이러한 세대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제도의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의 공감과 도움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 자신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물론 단기 아르바이트라서 내가 어떤 걸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지만, 방관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개방형 공연이었기에 좌석이 아니어도 잘 보일 수 있는 공연장 밖 자리를 안내해드리고 빈 좌석이 생기면 꼭 먼저 말씀드리겠다고 약속드렸다.

그때였다. 리허설 소리와는 별개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하나의 큰 소리가 아니라 경적, 꽹과리, 외침이 합쳐진 소리였다. 서울시청 옆 도로에서 집회 또한 진행되고 있었다. 집회의 내용은 윤석열 석방’, ‘부정선거 타도’, ‘독재 시작이런 문구가 적힌 종이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조기와 태극기를 같이 들고 있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무대가 설치된 서울광장과 그 옆 서울시청 5번 출구 쪽 보도는 전혀 다른 세상 펼쳐지고 있었고, 나는 그 가운데에 서 있었다. 언론에서 그리고 가끔 길을 가다 보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놀랄 정도로 큰 집단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따금 아빠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혹은 국경일에 광화문, 서울시청, 국회에 가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하는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일을 해야 하는 만큼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털었다. 고개를 들자 여러 어르신이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주최가 서울시예요? 정부예요?”, “허가받은 집회 시간에 이렇게 큰 소리로 무대 준비해도 됩니까?”, “이거(공연) 다 집회 방해하려고 하는 거죠?”로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과 그 옆에서 말리는 경호원분의 대화를 들어보니 집회 시간 후에 공연이 시작되도록 시에서 허가했는데, 리허설 소리 때문에 집회 소리가 묻히니 분노하신 상황이었다. 경호원분들과도 그저 말싸움만 계속되자, 경찰분들도 그 현장을 순회하시게 되었다. 다 같이 만세를 외치던 그 시대와는 많이 달라진 채로. 바다에 홍해가 가르듯 각자 다른 것을 원하며 서로를 몰아붙였다. 나는 그 현장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 양극화(보수-진보 갈등), 기사로 아무리 봐도 실감이 안 나던 걸 직접 보니 무기 없는 전쟁터라고 느껴졌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안 되는 뉴스, 그저 자기편만이 옳다고 믿고 말하는 사람들, 오직 두 가지 색깔만 존재하는 이 세상. 이 모든 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사회지만 그 날은 광복절 기념행사였다. 광복절, 우리가 모두 아는 사회 통합의 날이다. 물론 그 후 좌파와 우파로 분열되어 분란을 겪어 오기도 하였고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지만, 1945815일만큼은 그 누구보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싸움을 멈추면 어떨까?’라는 물음이 내 입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도 현장은 계속 진행되었다.

기념행사 부스에서 태극기 바람개비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과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며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나는 태극기를 잠시 응시했다. 옆에 같이 있던 스태프 한 분이 왜 아기한테 태극기를 들게 하는 거야?”라며 마치 아이가 담배를 물고 있는 것과 같이 반응했다. 아마 정치적 수단으로서 태극기를 들게 했다고 생각한 거 같았다. 그저 광복을 기념해서 집 대문 앞에 태극기를 걸듯이 아이도 든 것뿐인데. 태극기가 오해의 요소가 된 것이었다. 태극기가 태극기 그 자체로 더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더 서글퍼졌다. 태극기의 정치적 수단화, 사실 나는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속상함을 느꼈었다. 통일부에서 주최한 2024 한반도포럼에 다녀왔는데 그 전까지는 한반도평화포럼이어서 바뀐 이유를 관계자분께 여쭤보니 정권이 바뀌면서 평화라는 말이 빠지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정치란 단어 하나도 중요한 고도의 전략게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평화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 개념이 정치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에 한숨에 가까운 깊은숨이 쉬어졌다.
이런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던 틈에 본 공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표를 검수하는 역할로 재배정되었다. 이전에 마주쳤던 어르신과 마찬가지로 많은 어르신분이 사전예매를 못 하신 상태셨다. 자리가 많이 남아 다른 분들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작은 역할을 하는 스태프였지만, 괜히 직책이 높아 보이는 분께 좌석이 너무 비어도 괜히 멋없다며 거들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관계자분이 표 무료로 배부되니 줄을 서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우선 처음으로 만났던 어르신분께 달려가 얘기를 드렸다. 고맙다며 내 손을 잡아주시는데, 맞잡은 두 손이 종일 두 갈래였던 우리 사회가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뮤지컬 영웅이 한창인 공연장 속 무료 표를 거머쥔 분들의 입장을 도와드리는데, 아까 집회를 하시던 분들도 관람하시러 왔다. 서로 날 서듯이 예민해져 있던 아까의 낮과 달리, ‘한마음 한뜻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경계가 느슨해진 분위기였다. 그들의 표를 검수하면서 나는 마음이 둥그러졌다. 이런 말이 실제로는 없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둥근 마음이 생겨났다. 각자의 길로 직선만이 가득했던 세상에서 직선들이 곡선으로 변해 끝내 원을 만들어낸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 시대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모습 앞에서는 다 하나의 마음인 것을, 그 아름다운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마음이 많이 상했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통합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겼다.

뮤지컬 <영웅>이 끝나가며 아이들이 무대에 나와 그날을 기약하며라는 노래를 불렀다. “기약 없는 내일과 두려운 미래.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우리 후손 위해. 시간이 흐르면 역사 속에서 사라져. 이름도 없겠지만 나 오늘 이 순간 후회 없이 살고 싶어. 그날을 위하여. 우리 모두 어깨 감싸며 말하네.” 나뿐만 아니라 서울광장에 있던 모두가 들었다. 독립투사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국가를 지켰는지 다 함께 느꼈다. 그들이 지켜준 우리나라에서 우린 지금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가? 서로를 사랑하고 공감하며 어깨를 감싸기는커녕,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어깨를 밀치고 있지는 않은가? 수많은 고민이 번져가는 하루였다. 이날 느꼈던 이 사회의 두 가지 어려움은 빠른 문화변동이 세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가우리 편 편향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사실 해답은 같다고 생각한다. 공감. 이 두 글자가 사회 통합으로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다, 우리 모두 서로의 어깰 붙잡고 의지하고 때론 다독이며 이 사회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HUSS 사회구조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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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사회구조 컨소시엄](이하 “HUSS”)은(는) 다음의 목적을 위하여 개인정보를 처리합니다. 처리하고 있는 개인정보는 다음의 목적 이외의 용도로는 이용되지 않으며 이용 목적이 변경되는 경우에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에 따라 별도의 동의를 받는 등 필요한 조치를 이행할 예정입니다.

  1. 1. 홈페이지 회원가입 및 관리
    회원 가입의사 확인, 회원제 서비스 제공에 따른 본인 식별·인증, 회원자격 유지·관리, 각종 고지·통지, 고충처리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합니다.
  2. 2. 민원사무 처리 및 각종 서비스 제공
    민원인의 신원 확인, 사실조사를 위한 연락·통지, 처리결과 통보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합니다.
  3. 3. 학사행정 및 일반행정 업무 처리
    학사행정 및 일반행정 업무 등의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합니다.
  4. 4. 교육·인력 양성 업무 수행
    교육·인력 양성 활동 지원, 교육·인력 양성 업무 등을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합니다.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1. ① HUSS은(는) 법령에 따른 개인정보 보유·이용기간 또는 정보주체로부터 개인정보를 수집 시에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이용기간 내에서 개인정보를 처리·보유합니다.
  2. ② 개인정보 처리 및 보유 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 홈페이지 회원 가입 및 관리 : 홈페이지 탈퇴시까지
      다만, 다음의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해당 사유 종료시까지
      1. 1) 관계 법령 위반에 따른 수사.조사 등이 진행중인 경우에는 해당 수사.조사 종료시까지
      2. 2) 홈페이지 이용에 따른 채권.채무관계 잔존시에는 해당 채권.채무관계 정산시까지
    2. 2. 학사행정 및 일반행정 업무 처리: 준영구
    3. 3. 민원사무 처리: 보유 목적 소멸시 지체없이 파기
    4. 4. 교육·인력 양성 업무 수행 처리: 보유 목적 소멸시 지체없이 파기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1. ① HUSS은(는) 다음의 개인정보 항목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 필수항목: 이름, 소속, 소속대학, 표준분류(교육부계열), 학적(학번, 학년, 학기, 학적변동 사항, 변동일), 휴대전화, 이메일, 접속 로그, 쿠키, 접속 IP 정보
    • 선택항목: 성별, 장애학생여부, 생년월일, 학력, 서비스 이용 기록
  2. ② HUSS은(는) 개인정보를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에서 명시한 범위 내에서만 처리하며, 정보주체의 동의, 법률의 특별한 규정 등 「개인정보 보호법」 제17조 및 제18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합니다.
  3. ③ HUSS은(는)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제 3자 제공)
    •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자: 사업단의 각 소속기관(대학)별 상담원, 소속기관(대학)의 행정 관리자
    • 제공받는 자의 보유.이용기간: 준영구 또는 보유 목적 소멸시 지체없이 파기

제3조(개인정보처리 위탁)

  1. ① HUSS은(는) 원활한 개인정보 업무처리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업무를 위탁하고 있습니다.
    1. 시스템 유지보수
    - 위탁받는 자 (수탁자): ㈜엔에스데블
    - 위탁하는 업무의 내용: 시스템 운영 및 DB 관리
    - 위탁기간: 계약 만료일까지
  2. ② HUSS은(는) 위탁계약 체결시 「개인정보 보호법」 제26조에 따라 위탁업무 수행목적 외 개인정보 처리금지,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재위탁 제한, 수탁자에 대한 관리․감독, 손해배상 등 책임에 관한 사항을 계약서 등 문서에 명시하고, 수탁자가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처리하는지를 감독하고 있습니다.
  3. ③ 위탁업무의 내용이나 수탁자가 변경될 경우에는 지체없이 본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통하여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4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방법)

  1. ① 정보주체는 HUSS에 대해 언제든지 개인정보 열람·정정·삭제·처리정지 요구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2. ② 제1항에 따른 권리 행사는 HUSS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제41조제1항에 따라 서면, 전자우편, 모사전송(FAX) 등을 통하여 하실 수 있으며 HUSS은(는) 이에 대해 지체 없이 조치하겠습니다.
  3. ③ 제1항에 따른 권리 행사는 정보주체의 법정대리인이나 위임을 받은 자 등 대리인을 통하여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개인정보 처리 방법에 관한 고시(제2020-7호)” 별지 제11호 서식에 따른 위임장을 제출하셔야 합니다.
  4. ④ 개인정보 열람 및 처리정지 요구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 제4항,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정보주체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5. ⑤ 개인정보의 정정 및 삭제 요구는 다른 법령에서 그 개인정보가 수집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삭제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6. ⑥ HUSS은(는) 정보주체 권리에 따른 열람의 요구, 정정·삭제의 요구, 처리정지의 요구 시 열람 등 요구를 한 자가 본인이거나 정당한 대리인인지를 확인합니다.

제5조(개인정보의 파기)

  1. ① HUSS은(는) 개인정보 보유기간의 경과, 처리목적 달성 등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에는 지체없이 해당 개인정보를 파기합니다.
  2. ② 정보주체로부터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처리목적이 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법령에 따라 개인정보를 계속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개인정보를 별도의 데이터베이스(DB)로 옮기거나 보관장소를 달리하여 보존합니다.
  3. ③ 개인정보 파기의 절차 및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파기절차
    HUSS은(는) 파기 사유가 발생한 개인정보를 선정하고, HUSS의 개인정보 보호책임자의 승인을 받아 개인정보를 파기합니다.
    2. 파기방법
    데이터베이스에 기록·저장된 개인정보는 자료를 삭제하여 재생할 수 없도록 파기하며, 종이 문서에 기록·저장된 개인정보는 분쇄기로 분쇄하여 파기합니다.

제6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 조치)

HUSS은(는)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1. ①내부관리계획의 수립 및 시행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컨소시엄의 내부관리계획 수립 및 시행은 행정안전부의 내부관리 지침을 준수하여 시행합니다.
  2. ② 개인정보 담당자 및 전 직원 직장교육 실시
    각 기관(부서)별 개인정보 담당자를 지정하고 담당자 및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3. ③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 제한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대한 접근권한의 부여, 변경, 말소를 통하여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통제 조치를 하고 있으며, 침입차단시스템을 이용하여 외부로부터의 무단접근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4. ④ 접근기록의 보관 및 위변조 방지
    개인정보처리시스템에 접속한 기록(웹로그, 요약정보 등)을 최소 1년 이상 보관, 관리하고 있으며, 접속기록이 위변조 및 도난, 분실되지 않도록 보안기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5. ⑤ 개인정보의 암호화
    개인정보는 암호화 등을 통해 안전하게 저장 및 관리되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데이터는 저장 및 전송 시 암호화하여 사용하는 등의 별도의 보안기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6. ⑥ 보안프로그램 설치 및 주기적 갱신•점검
    해킹이나 컴퓨터 바이러스 등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 및 훼손을 막기 위하여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주기적인 갱신•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7. ⑦ 비인가자에 대한 출입 통제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개인정보시스템의 물리적 보관 장소를 별도로 두고 이에 대한 출입통제 절차를 수립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7조(권익침해 구제방법)

  • 정보주체는 아래의 기관에 개인정보 침해(개인정보 유출, 노출 등)에 대한 피해구제, 상담 등을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 아래의 기관은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컨소시엄 과는 별개의 기관으로서, 개인정보보호 종합지원시스템의 자체적인 개인정보 불만처리, 피해구제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시거나 보다 자세한 도움이 필요하시면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1.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 (국번없이) 1833-6972 (www.kopico.go.kr)
    2. 2.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 : (국번없이) 118 (privacy.kisa.or.kr)
    3. 3. 대검찰청 : (국번없이) 1301 (www.spo.go.kr)
    4. 4. 경찰청 : (국번없이) 182 (ecrm.cyber.go.kr)
  • 「개인정보보호법」제35조(개인정보의 열람), 제36조(개인정보의 정정·삭제), 제37조(개인정보의 처리정지 등)의 규정에 의한 요구에 대하여 공공기관의 장이 행한 처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받은 자는 행정심판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 행정심판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www.simpan.go.kr)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8조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①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컨소시엄]은(는)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업무를 총괄해서 책임지고,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한 정보주체의 불만처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보호책임자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책임자표로 구분, 소속, 대학, 직위, 이름, 연락처, 이메일 순으로 정보제공
구분 소속 대학 직위 이름 연락처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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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조(개인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에 관한 사항)

자동으로 수집, 저장되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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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③ 쿠키의 설치/운영 및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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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조(개인정보 열람청구)

정보주체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에 따른 개인정보의 열람 청구를 아래의 부서에 할 수 있습니다. HUSS은(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열람청구가 신속하게 처리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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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락처
서강대학교 02-710-2551
단국대학교 031-8021-8441
대전대학교 042-280-4947
상명대학교 02-781-7698
원광대학교 063-850-5871

제11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에 관한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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